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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술만 더 먹어보자36

한 술만 더 먹어보자 27 가끔씩 고구마, 감자, 달걀 따위를 쪄서 (주로 점심에) 한 끼 식사를 한다. 여름에 쪄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옥수수도 있다. 만들기가 간단해서 좋고 재료 원래의 은근한 맛도 먹을만 해서 좋다.시절이 시절이라 인터넷에 합성 사진 '네란버거'가 떠돈다고 한다.햄버거 집에서 군바리 몇 놈이 모여서 내란을 모의한 것을 풍자한 것이다.달걀을 삶을 때 보통 나는 2개, 아내는 1개 해서 3개를 삶는데 이번엔 나도 '네란'을 삶아 보았다.  전혀 상관없는 감자도 마찬가지 이유로 4개를 삶았다.감자를 찍어먹고 남은 소금을 '그놈'들에게 뿌리고 싶다.주술을 신봉하는 'XX'들이라고 하니 보통 사람보다 무서워하거나 모욕감을 더 느낄지 모르겠다. 늙은 호박으로 만든 세 가지 음식누님이 직접 농사지은 늙은 호박을 보내주었다.. 2024. 12. 24.
눈이 내린 동지 밤 사이 눈이 내렸다.많이 올 것이라는 예보에 비해선 적게 왔다.오늘은 동지, 팥죽을 먹는 날이다. 옛날에는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하며 설날에 버금가는 날로 생각했다고 한다.'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말도 그래서였을 것이다.요즈음이야 별미와 재미로 동지에 팥죽을 먹지만 옛사람들은 귀신이 팥죽의 붉은색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여 양기가 되살아나는 동지에 팥죽을 먹음으로써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집안의 평안을 비는 뜻을 담았다. 올 동지는 그런 기운이라도 빌려 용산 어딘가에 뿌리며 액막이를 하고 부정거리라도 읊고 싶다.♬앉아서 본 부정, 서서 들은 부정, 마루 넘어 오든 부정, 재 넘어 오든 부정, 강건너오든부정, 계엄부정, 헬기타고오든부정, 총들고오든부정, 장갑차굴러오든부정, 내란부정, 주가조.. 2024. 12. 21.
한 술만 더 먹어보자 26 겨울밤은 일찍 오고 길다.저녁을 먹고 난 뒤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시간을 보면 이제 겨우 9시를 조금 넘어 있을 때도 있다.입이 자주 궁금해진다. 애호박이나 감자 부침개, 국물떡볶이,  태국여행에서 사 온 팟타이, 등 냉장고 속 재료들과 맥주 한 잔의 유혹이 참기 힘들다. 이른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의 시간이다.'뭐, 오늘은 다른 날보다 멀리 산책을 했으니까······"아내와 둘이서 서로 합리화의 증인이 되기도 한다.한숨 자고 고구마 하나 깎아 먹고한숨 자고 무 하나 더 깎아 먹고더 먹을 게 없어지면 겨울밤은 하얗게 깊었지- 안도현,「그 겨울밤」-어릴 적 겨울밤은 더 길었다. 위 시에서 빼먹은 게 하나 있다.바로 배추꼬랑지다.김장을 할 때 잘라둔 원뿔 모양의 배추 꼬랑지는 감자.. 2024. 12. 17.
한 술만 더 먹어보자 25 내란 사태 이후 촛불집회에 관한 글을 자주 올렸다.예전처럼 밥을 먹고 손자저하들과 사람들을 만나고 산책을 하였고 그것들은 변함없이 나의 생활에 가장 중요한 일상이었음에도 그렇게 되었다. 차분하게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고  뉴스를 더 자주 보게 되었다. 날마다 계엄과 내란에 대한 증언과 증거가 미처 정리할 틈이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동안 무슨 일이 있을까 염려되어 서둘러 핸드폰을 열어본다는 친구도 있다.모든 사람에게 이번 사태가 주는 스트레스가 그만큼 큰 것이다.어제는 독감과 코로나 예방주사를 동시에 맞은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서인지 몸이 무겁고 몸살기가 있어 촛불집회 참석을 건너뛰기로 했다. 대신에 유튜브로 집회를 보았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젊은이.. 2024. 12. 12.
한 술만 더 먹어보자 24 누나가 가을에 보내준 고구마. 가끔씩 점심으로 먹어서 소진을 하려고 하지만 아내와 둘이선 한계가 있다.게다가 손자저하들이 썩 좋아하지 않으니 오래간다. 아내가 맛탕으로 만들어 줘도 크게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생각해 보니 지금보다 먹을 게 많지 않던 어린 시절에도 나 역시 찐 고구마를 좋아하지 않았다.이즈음에 먹는 고구마가 어릴 적에 먹은 양보다 더 많은 것 같다.생소한 이름의  빵 슈톨렌(Stollen)은 딸아이가 사주어 알게 되었다.독일에선 오래전부터 크리스마스 한 달 전쯤에 이 빵을 만들어 얇게 썰어 조금씩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고 한다. 안내서에는 차나 커피, 와인과 곁들여 먹으면 좋다고 나와있다.나만 몰랐지 검색을 해보니 이미 흔한 이름이고 상품이었다. 독일에서 어느 정도로 유명한 전통의 빵.. 2024. 12. 3.
곱단씨의 생일 미역국과 잡채는 아내와 나에게 최소한도의 생일 음식이다.설령 외식을 하게 되더라도 생일날 한 끼는 이 두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대부분의 한국인들도 건강과 장수를 비는 공통된 전통 민속 신앙 속에서 자랐으므로 비슷할 것이다.아내는 이번 생일에 미역국은 끓이되 잡채 대신 비빔국수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왠지 매운 음식이 당기네."평소 매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 생각하면 의아한 주문이었다.아마도 날마다 귀에 들려오는 정치 추문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모르겠다.점심으로 태국 국수처럼 양을 작게 해서  비빔국수 2가지를 만들었다. 콩나물비빔국수와 김치비빔국수.국수를 만들고 있을 때 사위가 보낸 꽃다발과 케이크가 도착했다. 이틀 전 딸아이 집에서 이미 생일 치레를 했기에 '이중과세'였지만 선물은 받아도 .. 2024. 12. 2.
한 술만 더 먹어보자 23 1. 알배추 갑자기 어떤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다. 멸치육수에 된장과 들깨가루를 옅게 푼 배추된장국.알배추를 한 통을 사서 세끼에 나눠 먹었다.국을 끓이고 남은 것은 다음 끼니에 배추전을 지졌다.그래도 남은 속고갱이는양배추쌈밥을 먹을 때 생으로  쌈장에 찍어 먹었다.작은 알배추 한 통의 다양한 변신.내가 알배추를 먹은  게 아니라 마치 알배추가 나를 위해 혼신을 다해  음식이 되어준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과를 깎을 때 "칼 들어갑니다" 하고 사과에게 미리 알려준다고 했던 것일까?'세상의 모든 생명은 밥을 먹고 살다가 스스로 밥이 되어 돌아간다'는 말을 생각해 본다.2. 애호박채볶음애호박은 모양을 잡기 위해 비닐을 씌워 키운다고 한다.사실이라면 비닐을 씌우지 않으면 어떤 모양이 될까? 마트에서 .. 2024. 11. 26.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22 20년 전쯤 어느 날  퇴근길에 서점에 들렀다가 뜬금없이 요리책을 한 권 샀다.왜 그랬는지 특별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요리책이라니? 아내와 딸이 놀랐다.나는 평소 라면도 제 손으로 끓여먹기 싫어하고 아내가 믹스커피 한 잔만 타달라고 할 때도 밖에 나가 사주겠다고 하는, 부엌 주변을 무슨 위험한 지뢰밭쯤으로 알고 지내던  인사였기 때문이다.책을 산 것만이 아니라 주말엔 책을 보고 과감히 음식을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두부전골이었던가? 반신반의하던 아내가 놀랐고 맛있다는 칭찬까지 해주었다.아마 고래를 춤추게 하기 위한 아내의 전략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칭찬이었을 것이다.칭찬에 고무된 나는 두번째 음식으로 돼지고기 수육에 도전을 했다.요리에 바탕이나 지식이 없던 나로서는 다소 무모한 행보였지만 무식이 부른.. 2024. 11. 22.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21 음식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 레시피에서 '적당량을 넣으라'는 말이 나오면 난감했다.도대체 적당량이라는 게 얼마큼이란 말인가?그런데 몇 해를 부엌에 서다보니 '적당한'이라는 계량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생겼다.예를 들면 무슨무슨죽이나 무슨무슨 볶음 같은 것.대개 냉장고에 남은 자투리 재료들을 활용할 때다.1. '적당히' 만든 김치죽11월은 새로운 김장을 위해 김치냉장고 속 묵은 김치를 비워야 할 때다.김치찌개, 김치콩나물국, 김치볶음, 등갈비감자탕 등을 만들다가 쫑쫑 썬 김치로 죽을 끓여 보았다.적당량의 멸치 육수에 적당량의 식은 밥을 풀어 적당히 간을 하면 된다.당근, 양파도 다져넣고 파도 썰어 넣었다. 달걀도 한 개 더했다. 부드러운 식감으로 속을 감싸듯 풀어주는 새콤하고 개운한 김치죽!남에게 대.. 2024. 11. 19.